두 프로젝트를 지우며
오늘 UnivMind와 OpenCairn을 지웠습니다.
서버도 내렸고, GitHub에서도 지웠습니다. 사실 GitHub에는 그냥 남겨둘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동이 애매하거나, 제가 봐도 설명하기 어려운 프로젝트를 공개된 곳에 계속 남겨두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누군가 제 GitHub를 봤을 때 그 프로젝트들이 제가 만든 것의 기준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싫었습니다.
UnivMind
UnivMind는 대학생을 위한 AI 학습 서비스였습니다.
대학에 오면 수업 자료가 PDF, PPT, 공지, 문서처럼 여러 곳에 흩어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시험 기간이 되면 자료를 찾고, 정리하고, 다시 이해하는 것 자체가 일이 됩니다.
그래서 대학생들이 수업 자료를 올리고, AI와 함께 정리하고, 질문하고, 학습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UnivMind는 작동했습니다.
완전히 망가진 프로젝트는 아니었습니다. MVP로서는 돌아갔고, 실제 사용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빈약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걸 굳이 계속 밀어붙일 이유가 있는가였습니다.
이미 시장에는 비슷한 서비스가 많았습니다. NotebookLM 같은 서비스도 있었고, ChatGPT, Claude, Gemini도 있었습니다. 대학생 대상 AI 학습 서비스들도 계속 보였습니다.
대학생들은 이미 쓸 수 있는 대체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서비스에 돈을 내는 것에도 생각보다 신중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더 잘 만들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질문이 생겼습니다.
정말 이 시장에서 내가 이길 수 있을까. 대학생들이 굳이 내 서비스를 써야 할 이유가 뭘까. 이 제품에는 해자가 있는가. 내가 단순히 만들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UnivMind는 작동은 하지만 충분히 날카롭지 않은 제품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지웠습니다.
OpenCairn
OpenCairn은 UnivMind에서 피벗하며 나온 프로젝트였습니다.
처음에는 대학생 AI 학습 서비스였지만, 점점 AI 노트앱이라는 표현이 너무 작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PDF에 질문하는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문서, 출처, 지식 그래프, AI workflow, evidence, agent ledger 같은 것들을 한 공간에서 다루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일회성 채팅이 아니라, AI와 함께한 작업의 근거와 흐름이 남는 지식 작업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OpenCairn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오픈소스 AI Knowledge OS 같은 방향을 생각했습니다.
비전은 컸습니다.
하지만 정작 구현은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특히 핵심이라고 생각했던 에이전트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습니다. 만들기는 만들었지만, 제가 원했던 수준의 작업 흐름을 안정적으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문제 정의는 너무 커졌고, 구현은 복잡해졌고, 설명하고 싶은 것과 실제로 동작하는 것 사이의 간극은 계속 벌어졌습니다.
OpenCairn은 UnivMind와는 다른 종류의 실패였습니다.
UnivMind는 작동했지만 빈약했습니다. OpenCairn은 비전은 컸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는 만들 수는 있지만 굳이 써야 할 이유가 약한 제품이었고, 하나는 방향은 컸지만 구현이 따라오지 못한 제품이었습니다.
AI로 만드는 것은 쉬워졌지만
요즘 AI 개발 도구를 쓰면 MVP를 만드는 진입장벽은 정말 낮아졌습니다.
예전 같으면 혼자 만들기 어려웠을 서비스도 Claude나 Cursor 같은 도구를 쓰면 꽤 빠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부터 그런 방식으로 전자출결 시스템, 학교 대상 서비스, AI 챗봇 서비스 등을 만들었습니다. 직접 운영해보고, 사용자를 모아본 경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큰 힘이라고 느꼈습니다.
이제 혼자서도 만들 수 있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서비스로 만들 수 있구나.
그런데 UnivMind와 OpenCairn을 거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만드는 것은 쉬워졌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굳이 써야 하는 이유를 만드는 것은 전혀 쉬워지지 않았습니다.
MVP를 만드는 능력과 좋은 제품을 만드는 능력은 다릅니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능력과 좋은 사업을 만드는 능력도 다릅니다.
AI로 코드를 짤 수 있다고 해서 고객 문제가 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서비스가 돌아간다고 해서 사람들이 돈을 내는 것도 아닙니다. 비전이 크다고 해서 제품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AI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더 빠르게 비슷한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면 결국 더 중요해지는 것은 기능 구현이 아니라 문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문제를 풀 것인가. 그 문제가 정말 강한가. 누가 돈을 내는가. 왜 지금인가. 왜 내가 해야 하는가. 해자는 무엇인가. 고객의 업무 흐름이나 암묵지에 얼마나 깊게 들어갔는가.
이런 질문들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지웠지만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UnivMind와 OpenCairn은 지웠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UnivMind를 통해 저는 대학생 대상 AI 학습 서비스의 한계를 봤습니다. OpenCairn을 통해 큰 비전만으로는 제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둘 다 완성된 제품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제 판단 기준을 바꿔준 실험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만들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왜 이걸 만들어야 하는가를 먼저 생각하려 합니다.
예전에는 기능을 붙이면 제품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문제의 강도와 사용자의 맥락이 더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예전에는 AI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습니다. 지금은 AI로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신중하게 문제를 골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삭제는 단순히 프로젝트를 버린 일이 아니라, 제가 어떤 것을 더 이상 붙잡지 않을지 정한 일에 가깝습니다.
아직 무엇을 해야 할지 완전히 정리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는 분명합니다.
다음에는 더 작게 만들고 싶습니다. 더 실제적인 문제에서 시작하고 싶습니다.
보여주기 좋은 비전보다, 실제로 누군가의 돈, 시간, 반복 업무를 줄이는 문제를 보고 싶습니다.
멋있는 AI 제품보다, 굳이 써야 하는 이유가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UnivMind와 OpenCairn은 지웠지만, 거기서 배운 것은 남겨두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