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로 돌아가기

모르는 것을 질문으로 바꾸기

2026-05-31personal

모르는 것을 질문으로 바꾸기

요즘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그거 어떻게 하는지 몰라.”

예전에는 이 말이 너무 자연스러웠습니다. 모르면 못 하는 게 당연했습니다. 무언가를 배우려면 책을 사거나, 강의를 듣거나, 이미 그걸 할 줄 아는 사람을 찾아야 했습니다. 정보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장벽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모르면 ChatGPT를 켜고 물어볼 수 있습니다. 정확히 뭘 모르는지조차 모르겠다면, “내가 지금 뭘 모르는지부터 알려줘”라고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개념이 이해되지 않으면 더 쉽게 설명해달라고 할 수 있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예시를 더 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드를 짜다가 에러가 나면 에러 메시지를 그대로 붙여넣고, 왜 터졌는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물론 AI가 모든 답을 정확하게 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점 때문에 더 중요한 능력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질문하고, 검증하고, 다시 묻는 능력입니다.

저는 요즘 AI 시대의 격차가 단순히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에서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모를 때 질문하는 사람”과 “모른다는 이유로 멈추는 사람” 사이에서 생긴다고 봅니다.

예전에 이 블로그에 나의 프로그래밍 일대기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글에서는 제가 하드웨어를 만지던 어린 시절부터 웹 개발과 AI에 관심을 갖게 되기까지의 흐름을 정리했습니다. 이번 글은 그 흐름을 다시 보면서, 제가 계속 반복해온 한 가지 습관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모르면 멈추기보다, 일단 묻고 찾아보고 작게 해보는 습관입니다.

저도 처음부터 알고 시작한 건 아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도 처음부터 뭔가를 잘 알아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릴 때는 코딩보다 전자기기와 하드웨어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형이 쓰던 갤럭시 S2를 받아서 쓰고, 엄마가 쓰던 갤럭시 노트3를 받아서 쓰면서 자연스럽게 기계를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생 때 TWRP를 올리고, XDA에서 커스텀롬을 찾아 설치하고, 루팅이나 오버클럭 같은 것도 해봤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안드로이드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궁금했습니다. 기기를 주어진 대로만 쓰는 게 아니라, 제가 직접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검색하고, 따라 하고, 안 되면 다시 찾아봤습니다.

2018년쯤에는 배틀그라운드가 너무 하고 싶어서 중고로 i5-4690과 GTX 1050 Ti를 샀습니다. 은행에 가서 이체하는 방법을 물어보고, 번개장터로 부품을 사고, 직접 조립했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제가 모든 걸 알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르면 물어보고, 유튜브를 보고, 부품을 맞춰보고, 안 되면 다시 찾아봤습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무엇을 잘 알아서 시작한 게 아니라, 모르는 상태에서 멈추지 않는 방식에 조금씩 익숙해졌습니다.

처음에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처음 소프트웨어에 관심을 가진 이유도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국 배경의 오픈월드 심레이싱 게임 같은 걸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C++ 책도 사고, 언리얼 엔진도 설치해봤습니다. 당연히 잘 안 됐습니다. 게임 개발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고, 그때의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웹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HTML, CSS, JavaScript를 유튜브로 보고 따라 했습니다. 노마드코더나 코딩 알려주는 누나 같은 채널을 보면서 클론코딩을 했습니다. 무료 도메인을 찾아 등록하고, GitHub를 만들고, 개인 포트폴리오 사이트도 만들었습니다.

지금 보면 부족한 코드였고, 디자인도 어설펐습니다. 그래도 제가 만든 페이지가 인터넷 주소를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이 접속할 수 있다는 감각은 꽤 컸습니다.

하드웨어는 부품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하고, 물리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는 한 번 만들면 복제되고, 배포되고, 다른 사람이 쓸 수 있습니다. 그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ChatGPT를 처음 만났을 때

고등학교 1학년이 되기 전, 2023년 1월쯤 ChatGPT를 처음 써봤습니다.

처음에는 웹개발 로드맵을 물어봤습니다. HTML 다음에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JavaScript는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웹사이트를 만들려면 어떤 순서로 가야 하는지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당시 ChatGPT 3.5는 불안정했고, 틀린 말도 꽤 했습니다. 그래도 저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모르면 검색 결과를 하나하나 뒤져야 했습니다. 이제는 제가 모르는 것을 말로 설명하면, 바로 옆에서 같이 생각해주는 도구가 생긴 느낌이었습니다.

중요했던 건 정답을 바로 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르는 상태에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이 컸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AI가 개인의 제작 능력을 크게 확장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주변의 불편함을 도구로 만들기

고등학교 2학년쯤 Claude 3 Opus가 나오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바이브코딩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지금처럼 체계적이지 않았습니다. Claude 웹에서 물어보고, VS Code에 복사하고, 에러가 나면 다시 에러 메시지를 붙여넣었습니다. 리팩토링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한 파일에 기능을 다 넣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돌아가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학교 커뮤니티 페이지, QR 출결 시스템, 간단한 웹서비스, AI 챗봇 같은 것들을 만들었습니다. 대부분 거대한 시장 분석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친구가 매일 아침 자습 시간에 수기로 출결을 적는 게 비효율적으로 보여서 QR 출결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친구들이 ChatGPT나 Claude 같은 AI 도구를 잘 쓰지 못하는 것 같아서 여러 모델을 한곳에서 써볼 수 있는 Sungblab AI를 만들었습니다. 친구들이랑 게임하다가 팀 짜는 게 귀찮아서 롤 5대5 스크림 팀짜기 도구도 만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만든 것들은 대부분 주변에서 직접 본 불편함에서 출발했습니다.

친구가 불편해하면 만들었습니다. 제가 귀찮으면 만들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도구로 만들어보려 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완벽한 개발자도 아니었고, 대단한 사업가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모르면 묻고, 문제가 보이면 만들고, 안 되면 다시 고치는 방식으로 조금씩 앞으로 갔습니다.

“어떻게 하는지 몰라” 다음에 할 수 있는 것

그래서 저는 가끔 “나는 그거 어떻게 하는지 몰라”라는 말을 들으면 조금 아쉽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물론 정말 모를 수 있습니다. 저도 대부분의 것을 모릅니다. 지금도 모르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다만 지금 시대에는 “모른다” 다음에 바로 할 수 있는 행동이 있습니다.

“그럼 뭘 물어봐야 하지?”라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웹사이트를 만들고 싶은데 아무것도 모른다면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웹사이트를 만들고 싶은데 아무것도 모른다.
무엇부터 배워야 하는지 단계별로 알려줘.

설명이 어렵다면 다시 물어보면 됩니다.

지금 설명이 어렵다.
HTML, CSS, JavaScript가 각각 무슨 역할인지 비유로 설명해줘.

그래도 막막하면 더 작게 쪼개면 됩니다.

오늘 당장 따라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웹페이지 예제를 만들어줘.

개발이 아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업 아이디어가 있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 아이디어가 실제로 사람들이 원하는 문제인지 검증하려면 무엇을 물어봐야 해?”라고 물어볼 수 있습니다. 투자를 공부하고 싶은데 막막하다면, “재무제표를 처음 보는 사람이 손익계산서부터 이해하려면 어떤 순서로 봐야 해?”라고 물어볼 수 있습니다.

AI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첫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환경은 열려 있습니다.

질문은 프롬프트 기술이 아닙니다

요즘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질문 능력은 단순히 프롬프트를 예쁘게 쓰는 능력이 아닙니다.

질문 능력은 문제를 쪼개는 능력에 가깝습니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구분하는 능력입니다. AI가 답할 수 있는 단위로 상황을 정리하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나온 답을 그대로 믿지 않고 검증하는 태도입니다.

예를 들어 초보자는 보통 이렇게 묻습니다.

로그인 기능 만들어줘.

조금 더 경험이 생기면 질문이 바뀝니다.

Next.js에서 Supabase Auth를 사용해서 로그인 기능을 만들고 싶다.
이메일 로그인, 세션 유지, 보호된 라우트 처리가 필요하다.
어떤 구조로 구현하면 좋을까?

더 나아가면 자신이 겪는 제약을 같이 설명하게 됩니다.

Next.js에서 서버 컴포넌트와 클라이언트 컴포넌트가 섞여 있다.
SSR에서 세션을 유지하면서 protected route를 처리하고 싶다.
hydration mismatch를 피하려면 어떤 구조가 좋을까?

질문의 수준은 결국 이해의 수준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AI 시대에 질문 능력이 중요해졌다고 해서 기본기가 덜 중요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습니다.

좋은 질문은 지식에서 나옵니다.

바이브코딩을 할수록 기본기가 필요했습니다

처음에는 AI가 코드를 짜주기 때문에 개발 공부를 덜 해도 될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초반에는 그렇습니다. 간단한 CRUD, 로그인, UI, API 연결, 배포 정도는 AI의 도움으로 빠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많이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일정 규모를 넘어가면 벽이 옵니다.

폴더 구조가 꼬입니다. DB 설계가 이상해집니다. 인증과 권한이 애매해집니다. 상태관리가 망가집니다. 타입이 깨집니다. AI가 같은 기능을 다른 방식으로 또 만들기도 합니다. 예전에 왜 이렇게 설계했는지 저도 기억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깨닫게 됩니다.

AI가 코드를 짜줘도 설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중요해집니다.

SSR과 CSR을 알아야 Next.js에서 제대로 질문할 수 있습니다. DB 관계를 알아야 schema를 지시할 수 있습니다. 인증 구조를 알아야 권한 문제를 잡을 수 있습니다. 네트워크와 배포를 알아야 로컬에서는 되는데 서버에서는 안 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테스트를 알아야 AI가 만든 코드가 정말 맞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바이브코딩은 개발 공부를 없애는 기술이 아닙니다.

개발 공부의 순서를 바꾸는 기술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문법부터 배우고, 자료구조를 배우고, 프레임워크를 배우고, 그다음 프로젝트를 만들었다면, 지금은 프로젝트를 먼저 만들고, 막히고, 질문하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CS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의 필요성을 몸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Claude에게 코드 달라고 하고, 에러를 붙여넣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다 프로젝트가 커지면서 repo 구조, 문서화, 테스트, 검증, handoff 같은 것들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AI가 저 대신 모든 것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AI가 만든 결과물을 관리하기 위해 더 좋은 구조가 필요해졌습니다.

모르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AI 시대에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지금도 모르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오히려 AI를 쓰면 제가 얼마나 모르는지 더 자주 느끼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모르는 상태에서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모르면 물어봅니다. 답이 이상하면 검증합니다. 이해가 안 되면 더 쪼개서 묻습니다. 내가 뭘 모르는지 모르면, 그것부터 물어봅니다. 답을 얻었으면 작게 실행해봅니다. 실행하다가 막히면 다시 묻습니다.

이 루프를 반복하는 사람이 앞으로 더 빠르게 배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질문만 한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질문한 뒤에는 실행해야 합니다. 실행한 뒤에는 실패를 봐야 합니다. 실패한 뒤에는 다시 고쳐야 합니다.

AI는 시작을 쉽게 만들어줍니다.

하지만 끝까지 가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AI는 많은 사람에게 같은 입력창을 열어줍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결과를 얻지는 못합니다.

누군가는 “나는 그거 어떻게 하는지 몰라”에서 멈춥니다. 누군가는 “그럼 뭘 물어봐야 하지?”부터 묻습니다.

누군가는 AI의 첫 답변을 그대로 믿습니다. 누군가는 다시 검증하고, 비교하고, 실행해봅니다.

누군가는 AI에게 막연히 “만들어줘”라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문제를 쪼개고, 맥락을 정리하고, 검증 기준을 세웁니다.

저는 앞으로 이 차이가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르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모르는 상태에서 멈추는 것이 문제입니다.

AI 시대에 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능력은 결국 이것입니다.

모르는 것을 질문으로 바꾸는 능력.